유언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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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아는 분 중에 대기업에 상무로 재직하는 분이 있습니다. 최근에 그 분이 뜬금 없이 전화를 하여 유언장을 써 두고 싶은데 어떻게하면 되는지 물어 왔습니다.
이제 50대 중반인데 갑자기 유언을 한다고 하기에 어디 건강이 안좋은지 걱정이 되어 물어봤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이상도 없었습니다. 그냥 미리 준비하고 정리를 해 두고 싶다는 게 그 분의 생각이었습니다. 유언하고자 하는 내용을 들어봤더니 특별한 것도 없었습니다. 처와 자녀들에게 골고루 재산을 나누어 주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유언이란 유언자가 사망해야 비로소 효력이 발생합니다. 그리고 사망하기 전에는 유언장을 언제든지 자유로이 없앨 수도 있고, 다른 내용으로 유언을 할 수도 있습니다. 서로 내용이 상반된 여러 개의 유언이 있으면 시간 순으로 가장 마지막에 한 유언이 유효합니다. 그래서 우리 민법에서는 유언장에 반드시 날짜를 적도록 하고 있습니다. 유언한 날짜가 적혀 있지 않으면 그 유언은 무효입니다.
 
미리 유언을 해 두면 훗날 있을지도 모르는 상속인들 사이의 분쟁을 막을 수 있습니다.
변호사로서 여러 가지 사건들을 접해 보지만 가장 안타까운 사건 중에 하나가 상속인들 사이에 상속재산을 놓고 벌이는 다툼입니다. 이런 다툼을 보고 있으면 돌아가신 분이 말을 할 수는 없으나 하늘나라에서도 원통하게 여길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또한 유언은 자신의 재산에 대한 최후의 처분입니다. 열 손가락을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지만 그래도 유독 애착이 가는 자식이 있을 수 있습니다. 유언을 통해 그 자식에게 다른 자식보다는 좀 더 많은 재산을 줄 수 있습니다.
다만 유류분이라는 제도가 있어서 어떤 상속인에게 모든 재산을 전부 다 줄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아무런 상속인이 없는 경우에 재산을 누군가에게 주겠다는 유언이 없으면 상속재산은 최종적으로 국가에 귀속됩니다. 

 

한편 우리 민법에서는 유언의 방식을 엄격하게 정하고 있습니다. 민법에서 정한 방식을 하나라도 지키지 않으면 유언은 가차 없이 무효가 됩니다. 최근에 저희 사무실에서 처리한 사건 중에도 유언의 방식을 지키지 않아서 무효가 된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습니다. 

 

부동산을 많이 보유하시고 계신 분이 돌아가시기 전에 자필 유언장을 작성해 두었습니다. 법학 교수는 아니었지만 대학의 교수로 재직하다가 정년 퇴직을 한 분이라 유언에 관해 스스로 공부를 한 뒤 혼자서 유언장을 작성해 두었습니다. 그런데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이 많다 보니 그 부동산의 번지수와 면적을 일일이 다 손으로 적는 것이 힘들었나 봅니다. 아니면 좀 더 정확하게 부동산을 표시하고 싶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유언장의 본문에 1번 부동산은 누구에게 주고, 또 2번 부동산은 누구에게 준다는 식으로 적은 뒤에 보유하고 있던 부동산 내역을 번호를 붙여 컴퓨터로 타이핑한 뒤 이를 출력하여 유언장 뒤에 붙인 것입니다. 

 

그런데 민법 제1066조에 의하면 자필로 작성한 유언장은 전체 문장을 반드시 유언자가 손글씨로 작성해야 합니다. 만일에 이를 어기고 컴퓨터나 타자기로 타이핑을 하면 그 유언은 무효가 됩니다.
다만 자필로 작성되지 않은 부분이 전체 유언 내용에서 부수적인 내용이고 그 부분을 제외하더라도 유언의 취지가 충분히 표현되어 있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유효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부동산을 유언으로 물려주면서 부동산 그 자체를 자필로 써 두지 않은 유언은 유언의 부수적인 부분이 아니라 유언의 핵심 내용이 빠져버린 유언이 됩니다. 따라서 그 유언은 무효가 됩니다.
 
최근에 사회적으로 놀라운 죽음을 보면서 유언에 관한 이런 저런 짧은 생각들이 나서 몇글자 적어봤습니다. 읽어보신 분에게 참고가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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