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라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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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음악시간에 배운 빠르기말이 있다. 악보를 보면 대개 첫 마디 위 악상 기호와 함께 빠르기말이 표기되어 있다. 
첫 마디 뿐 아니라 곡 중간에 빠르기가 변할 때도 쓰인다. 빠르기의 속도로 보면 가장 느린 표현은 라르고(largo)이다. 
아다지오(adagio)는 ‘느리게’, 안단테(andante)는 ‘걷는 속도로 천천히’, 모데라토(moderato)는 ‘보통 빠르기로’, 그리고 알레그레토(allegretto)는 ‘약간 빠르게’ 연주하라는 의미의 표현들이다. 

 

슬픔에도 빠르기가 있다면 어떤 빠르기말을 사용할 수 있을까? 사별 이후 겪게 되는 슬픔은 일반적으로 ‘걷는 속도로 천천히’라는 표현의 안단테도 어울릴 것 같지만,  사실은 라르고가 가장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해 본다.
 




 

이탈리아어로 라르고(largo)는 라틴어 라르구스(largus)에서 나온 말로 ‘폭넓게’ ‘느릿하게’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동시에 라르고는 ‘극히 표정 풍부히’ 연주하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기에 슬픔의 특성 가운데 두 가지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첫째, 슬픔의 과정은 급히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슬픔의 특성 중 하나는 독특함이다. 사람마다 겪는 기간과 강도가 다르다. 또한, 생각보다 긴 영혼의 광야와 같은 복잡하고 힘든 과정을 보낸다. 
 

둘째, 슬픔(grief)은 단순히 ‘슬픈’(sad) 감정이 아니라, 외로움, 죄책감, 후회감 등 모든 감정을 포함한 슬픔 혹은 비탄이다. 라르고는 ‘표정 풍부히’ 연주하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애도의 과정도 마찬가지다. 
마음속에 있는 감정들, 숨겨지고, 억눌려진 다양한 감정들을 풍부히 표현해야 한다.


사별 애도의 과정에 있어서 감정표현은 두 말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최근 어머니를 상실한 50대 초반의 남성을 상담한 적이 있다. 그의 어머니는 암 진단을 받아 투병 중이었다. 
암이 뇌로 전이되어 치매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이제 앞으로 남은 시간은 6개월 정도라는 의사의 말을 들었다. 그런데 치매증세로 인해 신호등 인지를 제대로 하지 못한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남성은 너무나도 허망했다. 막을 수 있었던 사고라고 생각하니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과 미안함이 몰려왔다. 6개월을 어떻게 보낼지 어머니와 계획한 모든 것들을 더 이상 할 수 없었다. 직장도 그만 둔 채 어머니 간병에 전심을 다했던 이 남성은 삶의 의미 또한 잃게 되었다.

 

나는 내담자가 자신의 감정을 탐색하고 그 감정들을 최대한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왔다. 또한 마음속에서 맴돌고 있는 억눌려진 감정의 실체를 파악하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한 시간 정도의 상담이 마무리 될 무렵, 남성은 내게 고마움을 표현했다. 아무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는 감정들을 쏟아내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고 한다. 

 

 

 

 

 

 

친구들을 만나 어머니와의 사별을 이야기 할 기회가 있었지만, 친구들은 단 5분도 집중해서 들어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상담의 자리에서 상담자가 자신의 감정들을 잘 이끌어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니 생각지도 않았던 감정들까지 다 표현 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사실상 일상의 평범한 대화 속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10분 이상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다들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람들은 슬픈 이야기를 듣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불편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우리 사회 문화는 슬픔은 부정적인 감정이라고 판단한다. 

 

하지만 슬픔은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다양한 감정들 중 하나일 뿐이다. 감정은 좋고 나쁜 감정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다루는 방식에 따라 차이가 있을 뿐이다.  즉, 감정을 건설적인 방법으로 다루냐 아니면 파괴적인 방식으로 다루냐가 중요하다.

 

종종 내담자들이 묻는다. 자신들이 겪는 슬프고 고통스러운 감정들이 얼마 동안 지속될 것인지 궁금해 한다. 
상실 초기에는 이 감정에서 평생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러니 감정을 억누르고, 생각하지 않으려 하면서 시간이 지나고 벗어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그러한 숨겨지고, 억눌리고, 표현되지 않은 감정들은 우리의 삶에서 언제가 다른 모습으로 드러나게 되어 있다. 또한 다른 상실을 경험할 때, 애도되지 못한 이전 상실의 경험이 더해져 더 힘든 과정을 보낼 수도 있다.

 

그러니 애도의 과정을 잘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 앞서 언급한 어머니를 잃은 남성이 내게 한 가지 질문을 했다. 
어머니를 화장하고 재를 뿌리고 돌아오면서 약간의 재를 남겨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작은 단지에 모시고 식사 때마다 앞에 놓고 마치 함께 식사하는 것처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행동하는 자신이 이상한 게 아니냐고 묻는다. 누군가 그렇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이 보기에도 정상적이지 않다고 볼 것 같다고 한다. 나는 그에게 이렇게 말해 주었다.

 

“좋은 애도의 과정을 보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기왕이면, 앞에 모셔만 놓지 마시고, 식사하시면서 대화를 나누시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제게 이야기했던 것처럼 어머니에게 미안한 마음을 표현하시면서 죄책감도 덜어내시고, 갑자기 돌아가셔서 마지막 인사도 못하셨을 텐데 하고 싶은 말씀도 하시고, 감사의 인사도 전하시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내담자는 편안한 마음으로 자리를 떠났다. 그렇게라도 어머니와 시간을 보내면서 자신을 많이 표현하길 기대한다. 
그렇게 마음을 표현한다면, 윌리엄 워든 박사의 애도의 과업 이론에서 ‘사별슬픔의 고통을 겪으며 애도작업’하는 두 번째 과업을 훌륭히 보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언제까지 그렇게 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내담자의 몫이다. 언젠가는 감정적 재배치와 공간적 재배치의 과정을 보내게 될 것이다. 


“슬픔의 라르고.” 느리게, 감정 풍부히 표현하는 과정을 통해 좋은 애도의 과정을 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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