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의 시처럼, 인생을 성찰하는 나만의 비문
묘도 이렇게 다를 수가 있구나 하는 탄성을 자아내게하는 새로운 시도.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과 추모 방식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달라진다.
요즘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추모 비석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비문은 원래 출생과 소멸의 기록지에 불과했으나
요즘에는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마지막 대화 같은 울림을 주는 비문이 늘고 있다.
분당 야탑동에 위치한 분당메모리얼파크(www.bmpark.co.kr)에 가면
그런 파격의 일단을 확인할 수 있다.
한류스타 박용하, 영원한 가객 김현식, 광화문 연가의 작곡가 이영훈 등이 잠들어 있는
분당메모리얼파크 포레스트헤븐 묘역에서는 검은 오석 위에
나고 죽은 해를 기록한 예의 무미건조한 비문을 찾아보기 어렵다.
애틋하고 솔직한 마음과 기원을 서술형 문장으로 담고있는,
저마다 다른 디자인과 색상의 봉안묘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형형색색의 봉안묘 속을 거닐며 비문을 읽어본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그리워해야할까? 달이되고 별이되어 빛나리.”
“어머니 아버지, 불러보고 싶습니다.”
“당신의 아들 딸이어서 참 좋았습니다.”
“햇살 같은 당신의 미소로 나의 눈물을 닦습니다.”
“삶은 자식을 위한 헌신으로 지치고 일그러졌으나
영혼이나마 나비가 되어 푸른산과 청아한 바람 벗삼아 편히 쉬소서.”
남은 사람들이 세상을 떠난 이를 그리워하는 애절한 마음이 느껴진다.
세상을 떠난 분에 대한 고마움을 진심으로 표현한 대화체 비문,
참으로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새로움이다. 형식과 내용 모두 신선하다.
‘왜 그 동안 그렇게 오래된 유교 형식에 갖혀 답답한 모양의 비석에만 충실했던 것인가?’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이렇게 자유롭게 우리 마음을 드러내는 비문,
돌아간 이와 산 자를 이어주는 또 다른 가교, 작지만 큰 문화의 변화이다.
“당신의 앞선 걸음이 있어 길을 잃지 않았습니다.”
“좋은 바람 불면 당신일 줄 알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당신은 우리에게 선물 같은 분이셨어요.”
하나하나 글귀를 써내려 갈 때의 진지한 모습을 상상해보면
어느새 가슴이 먹먹해지는 느낌이 든다. ‘정말 사랑했었구나!’하는 느낌도 다가오면서
지난 주말 ‘내가 사랑하는 이에게 왜 그랬을까?’하는 가벼운 후회와
‘살아서 정말 잘해야겠다’는 뻔하지만 새삼스런 각오도 자연스럽게 솟아난다.
‘그래 죽으면 다 똑 같은데 잘 해줘야지’ 라는 생각을 건지고 간다면
비문을 둘러본 효과는 마음의 산삼과 진배없으리라.
“여기도 참 좋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이승과 저승은 논두렁 하나의 사이, 먼저와 기다리던 부모나 형제, 활짝 웃으며 만나고 있을까?”
세상을 떠나는 분들의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래 여긴들 어떠리,
또 저긴들 무슨 상관이랴? 체념과 달관이라 칭하기에는 서로 조금 부담스럽다 해도,
육중한 죽음의 무게에서 자유롭고자 하는 마음,
유난스럽지 않게 세상을 정리하고자 하는 역설적 진지함이 느껴진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화두를 죽어서는 깨달을 수 있는 것일까?
가장 더디게 세상의 변화를 담아내는 곳 - 묘지, 그 곳에도 다양성과
개성화라는 추세는 어김없이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번 주말에는 분당메모리얼파크로 가벼운 사색 추모 투어를 떠나보자.
그리고 내 생을 장식할 한 두줄 비문을 미리 써보는 연습을 해보자.
[MTN 온라인 뉴스팀=이은정 인턴기자(lej408@mtn.co.kr)]
원본출처:http://news.mtn.co.kr/newscenter/news_viewer.mtn?gidx=2012051609075846087
묘도 이렇게 다를 수가 있구나 하는 탄성을 자아내게하는 새로운 시도.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과 추모 방식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달라진다.
요즘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추모 비석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비문은 원래 출생과 소멸의 기록지에 불과했으나
요즘에는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마지막 대화 같은 울림을 주는 비문이 늘고 있다.
분당 야탑동에 위치한 분당메모리얼파크(www.bmpark.co.kr)에 가면
그런 파격의 일단을 확인할 수 있다.
한류스타 박용하, 영원한 가객 김현식, 광화문 연가의 작곡가 이영훈 등이 잠들어 있는
분당메모리얼파크 포레스트헤븐 묘역에서는 검은 오석 위에
나고 죽은 해를 기록한 예의 무미건조한 비문을 찾아보기 어렵다.
애틋하고 솔직한 마음과 기원을 서술형 문장으로 담고있는,
저마다 다른 디자인과 색상의 봉안묘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형형색색의 봉안묘 속을 거닐며 비문을 읽어본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그리워해야할까? 달이되고 별이되어 빛나리.”
“어머니 아버지, 불러보고 싶습니다.”
“당신의 아들 딸이어서 참 좋았습니다.”
“햇살 같은 당신의 미소로 나의 눈물을 닦습니다.”
“삶은 자식을 위한 헌신으로 지치고 일그러졌으나
영혼이나마 나비가 되어 푸른산과 청아한 바람 벗삼아 편히 쉬소서.”
남은 사람들이 세상을 떠난 이를 그리워하는 애절한 마음이 느껴진다.
세상을 떠난 분에 대한 고마움을 진심으로 표현한 대화체 비문,
참으로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새로움이다. 형식과 내용 모두 신선하다.
‘왜 그 동안 그렇게 오래된 유교 형식에 갖혀 답답한 모양의 비석에만 충실했던 것인가?’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이렇게 자유롭게 우리 마음을 드러내는 비문,
돌아간 이와 산 자를 이어주는 또 다른 가교, 작지만 큰 문화의 변화이다.
“당신의 앞선 걸음이 있어 길을 잃지 않았습니다.”
“좋은 바람 불면 당신일 줄 알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당신은 우리에게 선물 같은 분이셨어요.”
하나하나 글귀를 써내려 갈 때의 진지한 모습을 상상해보면
어느새 가슴이 먹먹해지는 느낌이 든다. ‘정말 사랑했었구나!’하는 느낌도 다가오면서
지난 주말 ‘내가 사랑하는 이에게 왜 그랬을까?’하는 가벼운 후회와
‘살아서 정말 잘해야겠다’는 뻔하지만 새삼스런 각오도 자연스럽게 솟아난다.
‘그래 죽으면 다 똑 같은데 잘 해줘야지’ 라는 생각을 건지고 간다면
비문을 둘러본 효과는 마음의 산삼과 진배없으리라.
“여기도 참 좋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이승과 저승은 논두렁 하나의 사이, 먼저와 기다리던 부모나 형제, 활짝 웃으며 만나고 있을까?”
세상을 떠나는 분들의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래 여긴들 어떠리,
또 저긴들 무슨 상관이랴? 체념과 달관이라 칭하기에는 서로 조금 부담스럽다 해도,
육중한 죽음의 무게에서 자유롭고자 하는 마음,
유난스럽지 않게 세상을 정리하고자 하는 역설적 진지함이 느껴진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화두를 죽어서는 깨달을 수 있는 것일까?
가장 더디게 세상의 변화를 담아내는 곳 - 묘지, 그 곳에도 다양성과
개성화라는 추세는 어김없이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번 주말에는 분당메모리얼파크로 가벼운 사색 추모 투어를 떠나보자.
그리고 내 생을 장식할 한 두줄 비문을 미리 써보는 연습을 해보자.
[MTN 온라인 뉴스팀=이은정 인턴기자(lej408@mtn.co.kr)]
원본출처:http://news.mtn.co.kr/newscenter/news_viewer.mtn?gidx=2012051609075846087




